집안 가득 발 디딜 틈 없이 쓸모없는 물건들로 집을 가득 채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밖에서 신문, 폐지, 빈병, 플라스틱, 고철, 나무 등을 쉴 새 없이 가져와 집안에 쌓아두고, 절대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잡동사니 더미 속에서만 위안과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 이들을 ‘저장강박(Compulsive hoarding)’이라고 부릅니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저장강박증을 행동을 호딩(Hoarding)이라 부르며 그러한 사람을 호더(Hoarder)라 부릅니다.
세계적인 예술가 앤디 워홀은 동화책, 유명인의 신발, 편지, 사진, 기사 등을 수집했으며 사람들이 쓰레기라고 취급하는 물건까지 모았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책상 위의 물건들을 모두 상자에 담은 뒤 “타임캡슐”이란 이름으로 부르길 좋아했는데, 집안에 타임캡슐 상자만 600개가 넘었으며 집이 5층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물건으로 가득 차 그는 겨우 2개의 방에서만 생활했다고 합니다. 앤디 워홀은, 예술가 이기에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저장강박 증세를 보이는 호더(Hoarder)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장강박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외국에서는 잘 알려진 증상으로, 점차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에 해외의 많은 언론에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A&E 방송사에서는 ‘호더스(Hoarders)’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러한 증상을 앓고 있는 호더들의 이야기를 매주 다루고 있습니다. 처음에 <호더스>는 어지럽혀진 집을 깨끗이 청소와 정리정돈 한 후, ‘Before & After’를 비교하는 일종’의 라이프스타일 리얼리티쇼였지만, 저장강박증에 대해 계속 다루다보니 이것이 정신 질환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다큐멘터리로 그 방향을 선회했다고 합다. 동물을 수십마리를 모으는 출연자의 집에서 배설물이 가득하고, 심지어 동물의 사체까지 발견 되는 장면을 보면서도, 320만명의 시청률이 나올 정도로 시청자들은 눈을 떼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건 아마도, ‘수집’이라는 이름 아래 수천장의 DVD를 모으고, ‘편리함’이라는 명목으로 수백개의 통조림을 쌓아두고 사는 우리의 모습이 비춰져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 평론가’의 발언처럼 ‘호더스’가 축적한 산더미 같은 잡동사니들은 우리’의 소비문화를 대변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1947년 3월 21일 금요일 오전, 미국 뉴욕 할렘가 경찰서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콜리어 저택에 시체가 있어요.” 이웃 주민의 신고였습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산더미 같은 물건 때문에 현관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다른 창문들도 모두 마찬가지였고, 결국 쇠지레와 도끼를 가져와 지하실로 통하는 쇠창살문을 땄습니다. 현장 도착 몇 시간 만에야 문을 열 수 있었죠.
콜리어 형제는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 집에 쌓아두는 기벽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잡동사니의 미로로 된 집을 며칠 동안 수색한 후에야, 드디어 시체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조사 결과 동생 랭글리는 자신이 설치한 부비트랩을 건드리면서 신문더미에 깔려 질식사했고, 동생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눈먼 호머는 굶어 죽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세상과 단절된 채 그들만의 ‘쓰레기 궁전’ 속에서 자유롭고 완벽한 인생을 보내고 있다고 믿었던 형제는 말 그대로 잡동사니로 인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당시 뉴욕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형제가 살았던 저택의 내부 모습은 그 후로도 내내 화제가 됐습니다. 엄청난 양의 잡동사니로 인해 건물은 무너질 지경이었고, 수거한 쓰레기만 무려 19T에 이르렀습니다. 쓰레기 처리에 들어간 세금만 해도 상당했죠. 사건 발생 60여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이름을 딴 공원이 존재하고 있으며 ‘저장 강박’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며, 저장 강박을 사회적으로 돌보아야 한다는 인식을 만들게 된 최초의 사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집에도 물건이 좀 많은데 나는 저장 강박증이 아닐까?
또는, 가족에게 물건이 많은데 혹시 저장 강박 증세가 아닐까 걱정이 되신다면,
다음 저장 강박 지수를 체크해보시기 바랍니다.
저장강박 자가 체크리스트
1. 나는 필요할지도 몰라서 같은 물건도 여러개를 보관한다.
2. 나는 우리 집이 부끄럽다.
3. 내가 가진 물건이 많아서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다.
4. 내 물건이 많아서 지나가기 불편한 집안의 공간이 있다.
5. 쌓아둔 물건 때문에 원래 용도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창고로 쓰는 방이 있다.
6. 나는 물건을 버렸다가도 종종 마음이 바뀌어서 쓰레기통을 뒤져서 꺼내곤 한다.
7. 잡동사니가 많아서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릴 때가 자주 있다.
8. 내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손님을 초대하고 싶지 않다.
9. 내가 필요한 것보다, 같은 아이템을 종류별로 여러개 구입하곤 한다.
10. 물건을 버리려고 하면, 불안하거나 우울해진다.
11. 필요한 정보가 있을지 몰라서 오래된 잡지나 신문을 계속 보관한다.
12. 의자와 식탁 등 가구 몇 개는 잡동사니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
13. 내 친구나 가족이 내 물건을 건드리려고 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14. 나는 감정적인 이유가 있는 모든 물건을 보관하고 싶다.
15. 필요하지 않더라도 세일을 하는 물건은 일단 사고 볼 때가 많다.
16. 내가 사랑하는 내 물건들을 다른 사람들이 잡동사니 나 쓰레기 라고 부를 때가 있다.
17. 내 물건들에 대해 생각하는데 시간을 자주 쓰는 편이다.
18. 물건이 너무 많아서, 고장난 물건을 수리하지 못하고 놔둔 것이 있다.
19. 멋진 물건이라고 생각되면, 필요하지 않아도 일단 산다.
20. 새로운 물건을 사는 것을 통제할 수가 없다.
21. 집안에 물건이 많아서 하고 싶은 일을 못할 때가 있다.
22. 가끔 집이 나를 압도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체크리스트 결과
- 9개 이하 : 정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늘 물건을 사거나 얻을 때, 기준을 정해서 가져오는 습관을 만드세요.
- 10개 이상 : 위험합니다. 당신은 인지하지 못하지만 가족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가족과 진지하게 상의를 시도해보세요.
- 15개 이상 : 저장강박 증상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심리전문가 또는, 정리 컨설턴트에게 상담을 받아보시길 바랍니다.
저장강박은, 소비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인 누구나 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이나 이웃과의 소통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조기에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미국의 경우 각종 저장강박 전문 단체나 공공기관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전문 기관이 없는 상태입니다. 한국에서는, 여러 저장강박 가정의 정리를 맡은 적 있는, 정리컨설턴트에게 상담을 받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