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을 발견하는 정리

작성일 : 2023-12-31

내 직업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것은 2011년 여름 ‘화성인 바이러스’라는 TV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제작진은 청소나 정리와는 담쌓고 쓰레기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난장판녀’ 편을 준비 중이었고, 내게 그녀의 집을 정리하고, 정리를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해 왔다.

촬영하기 전, ‘난장판녀’의 집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방송 후 조작 의혹이 제기될 정도였으니까. 나 말고도 청소 전문가, 해충박멸 전문가도 투입됐다. 나는 그동안 만나왔던 정리 못 하는 사람들처럼 ‘화성인’에게 심리적인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했다. 그러나 직접 만나 보니 이상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귀여운 20대 여성이었다. 직업도 패션디자이너였고, 직장생활도 잘하고 있었고, 외모도 깔끔했다.

“어쩌다가 집이 이렇게 됐어요?” 알고 보니 그녀는 2년 전 독립을 했고, 처음에는 어머니가 와서 집을 치워주셨는데, 이제는 어머니도 자주 안 오시고 본인도 야근이 잦고 일이 너무 힘들다 보니 치우는 것을 계속 미루다 이렇게 됐다는 것이다. 급기야 화장실이 더러워 근처 찜질방에서 목욕을 하고, 악취 때문에 1년 내내 에어컨을 가동하고, 밤에는 벌레들 때문에 불을 켜고 잠자리에 들어야 할 정도였다.

그동안 만나왔던 정리 못 하는 사람들 중에는 심리적 문제 때문에 물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난장판녀’는 단순히 정리가 귀찮아서 극단적인 상황에 이른 경우였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처럼 말이다(건물 주인이 깨진 창문을 내버려 두었더니 나머지 유리창도 깨지고 강력범죄가 일어나는 장소가 됐다는 이야기). 그녀도 처음에는 사소한 쓰레기를 방치하는 것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소한 것들을 방치하다 보니 자신을 악취와 벌레, 쓰레기 속에 방치하고 돈, 에너지, 건강까지 잃게 만들었다.

‘난장판녀’를 만난 것은 사소한 미룸이 단기간에 얼마나 극단적인 상태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좋은 경험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미루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몇 가지 규칙을 알려주었다. 바구니와 라벨링을 활용해 물건에 제자리를 만들어 주고, 사용한 뒤에는 제자리에 둘 수 있도록 했다. 쓰레기통을 곳곳에 설치해 쓰레기가 생기면 바로 버릴 수 있도록 했다.

‘난장판녀’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리나 청소를 사소하게 생각하고 미루는 사람이 많다. 많은 직장인이 정리나 청소보다 업무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자꾸 미루게 된다는 하소연을 했다. 그러나 관찰 결과, 일을 깔끔하게 잘 처리하는 사람들은 업무가 많은 상황에서도 여유가 느껴지고, 책상 정리나 컴퓨터 파일 정리, 이메일 정리도 잘했다. 정돈이나 위생상태에 어느 정도 신경을 쓰는 사람은 사소한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매사 책임감을 가지고 실수 없이 깔끔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다.

‘난장판녀’와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기억하자. 우리 삶이 어느 순간 무질서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사소한 것들을 방치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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