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직장은 작은 출판사였다. 영업을 담당했기 때문에 서점에 자주 들렀고, 그러다 보니 한 주에 한두 권 정도는 자연스럽게 사게 됐다. 어느 날 집안을 둘러보니 작은 방한칸이 누울 때 빼곤 온통 책으로 뒤덮여 있음을 깨닫게 됐다. 책 정리를 안해서 결국 악성 비염에 걸렸고, 하루종일 양쪽코가 막힌 상태에서 살아야 했고, 음식을 먹는데도 그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그때부터 책을 열심히 버리자고 마음먹었다. 매일 한 권씩 버리기로 결심했고, 나만의 기준을 만들었다. ‘매일 한 권씩 버린다. 1년 이상 읽지 않은 책은 버린다’ 등등. 시간 날 때마다 책장을 훑어보고 안 읽을 것 같은 책은 빼서 책상 위에 두고, 나갈 때마다 가지고 나가서, 읽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그마저도 없으면 회사 재활용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버릴 만한 책이 없을 때쯤 나는 깔끔하게 정리된 책장이 돼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기대와는 달랐다. 그동안 열심히 버렸음에도 책은 전혀 줄어드는 것 같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버린 만큼 매주 새로운 책을 다시 샀기 때문이었다. 또 한 가지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하나 있었는데, 매일 버릴 책을 고르기 위해 책장을 스캔할 때 어느 날은 그냥 지나쳤던 책이, 다음 날은 버릴 책이 돼 있는 것이었다.
버릴 것을 고르는 일은 안 읽은 책과 소위 ‘밀당’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밀당과정에서 아주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 사실을 안 순간 버릴 것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남기고 싶은 것을 골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버릴 책과의 ‘밀당’을 끝내기로 한 것이다. 그 후 나는 책장에 있는 책을 모두 꺼내고, 방안에 흩어져 있던 책들을 한곳에 모았다. 방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책이 쌓였다.
‘책장의 3분의 2 정도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로 채우겠어’라고 결심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책장에 남길 만한 명예의 전당에 오를 책들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고르기가 훨씬 수월했고, 정말 많은 책이 바닥에 남게 됐다. 나는 그 책들을 과감히 <아름다운가게>와 지인분 학원에 기부하고, 인터넷 중고서점에 팔고, 나머지는 재활용 쓰레기로 처분했다. 책 수는 훨씬 줄었지만 좋아하는 책들로만 채워진 책장을 보니 기분 좋고, 만족스러웠다.
집 안의 물건 중 가장 많은 것이 옷과 책이다. 정리컨설팅을 할 때 고객들은 특히 옷 버리기를 어려워하는데, 그럴 때마다 자주 쓰는 방법은 목적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고객님이 원하는 드레스룸은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그려보게 한다. 고급 매장처럼 옷들이 잘 정리돼 있고 걸려 있는 옷들은 지금 당장 입고 나가고 싶을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내게 잘 어울리는, 설레는 옷들로만 채워져 있는 나만의 옷가게! 이렇게 생생하게 원하는 드레스룸의 이미지를 그리게 하면, 남길 것들을 훨씬 잘 가려내고, 입지 않는 옷에 대한 미련도 줄어든다.
버리기 어렵다면 남기고 싶은 것들을 골라보자. 나에게 어울리지 않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물건들과의 ‘밀당’을 이제 그만 끝내자. 내가 좋아하는 것, 현재 나의 가치를 높이는 것들로만 내 주변을 채운다면 더 행복해지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샘솟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